[ 사진은 원문에 게재된 것이 아니라 제가 걍 넣은겁니다.
레바논 인가가수, Nancy Ajram. (출처:Flickr.com)..노래 좋아요..ㅎㅎ]
히잡, 니깝, 알 아미라, 두팟따, 부루카, 차도르...
무슬림 여성들이 착용하는 여러가지 의복을 표현하는 언어 또한 이 이슈자체만큼 복잡하고 애매하게 보입니다. 의류들 중 어느 것도 이슬람의 머리수건 혹은 베일만큼 수 많은 경악과 논쟁 그리고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문자 그대로, '그들의 소매자락에 그들의 종교를 입은' 무슬림들에게 히잡(아랍어로 커튼 혹은 장막을 의미하는)은 많은 것들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은 수 세대에 걸쳐 의심의 여지 없이 단순히 받아들여져 온 문화적 관습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겸허한 옷차림과 행동은 자신과 신과의 관계, 혹은 종교적 헌신, 심지어 그들의 정치성향마저 정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히잡은 간단히 땅바닥에 버려지거나, 열정적 의지로 계속될 수도 있는 복잡한 여정입니다.
"무슬림 여성들은 종교적인 신실함, 정체성 그리고 정치적 성향의 표출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히잡을 착용합니다." 무슬림 공동체에서 하나의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여성을 돕는 자문회사 'Inspire'의 공동설립자인 타흐미나 살림은 말합니다. “대부분은 기꺼히 착용하고 있지만, 마지못해 착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머리수건=히잡, 그리고 그것의 가장 눈에 띄는 친척뻘인 얼굴가리게(Face veil)를 폄하하는 이들에게는 이 겸허한 옷차림이 그들 스스로 기꺼이 받아들여진 것인지 아닌지를 언급할 필요없이 단순히 '억압의 상징'에 불과합니다. 폐지론자들은 도대체 왜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자발적으로 자기 머리카락과 얼굴을 가리겠느냐고 묻습니다.
이번 달 말에 프랑스의 집권여당은 어떤 여성이라도 니깝이나 부르카 (아랍과 아프간 스타일의 모든 얼굴을 가리는 베일)를 착용한 여성에게 700파운드의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에 대해 토론할 예정입니다. 만약 그 법이 통과된다면 이는 서구유럽이 그들의 무슬림시민과 맺어온 관계에 있어 새 획을 긋는 계기가 될 것이며, 유사한 법률을 제정하고자 하는 이웃국가의 정치가들은 큰 힘을 얻게될 것입니다.
금지해야 한다와 금지해선 안된다는 논쟁에 있어서 논객들이 주로 우위를 점하곤 합니다. 히잡은 선이거나 악, 그르거나 옳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슬람적인 옷차림에 대한 많은 억제책으로 인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받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인디펜던트지는 각자 다른 인생을 걸어온 5명의 영국여성들에게 그들이 착용하기로 한 히잡의 형태가 무엇이며, 왜 그것을 착용하는지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의 가족 중에 처음으로 얼굴전체를 가린 대졸여성에서부터, 히잡을 벗고도 무슬림으로서 독실하게 실천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4아이의 어머니까지 -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 어깨의 스카프와 같이 다채롭고 다양했습니다.
29살의 라흐마나라 쵸우더리(Rahmanara Chowdhury)는 히잡에 대해 각자가 선책한 7자매의 일원으로 자랐습니다. Loughborough 대학의 학생자원봉사활동가로 활동하면서 그녀는 늘 히잡을 착용했지만, 그녀는 9년전 얼굴을 전체를 가리고 눈만을 보이도록 한 아랍의 의복인 니깝을 착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꽤 대가족이었어요, 7명의 딸이 모두 함께였고, 어렸을 때부터 히잡에 대해서 배웠었죠. 하지만 제 생각엔 제가 자라면서 히잡이 갖고 있는 영적인 이유를 이해하기 좀 더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건 제가 10대였을 때부터였고, 실제로 베일을 착용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서의 학년부터였어요.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1년이 고스란히 걸렸지요. 전 그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것을 살펴보고 제 스스로 연구를 했어요. 베일을 착용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저에겐 영적인 여행이었고, 그건 무언가를 믿는 것은 옳고, 다른것은 틀리다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었어요.
그 때에는 제 자매들 누구도 베일을 착용하지 않았고, 그들은 베일 대신에 히잡(머리수건 등)을 착용하고 있었어요. 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집안에서는 꽤 큰 일이 아닐 수 없었죠.
전 어느 누구와도 상의 한적이 없었어요. 내가 그것을 입기로 결정하자마자 전 그냥 그것을 입었어요. 제가 학교에서 돌아오던 어떤 날이 기억나는군요. 아버지는 집을 나서고 계셨고, 제가 길을 따라 걸어오는 것을 보셨어요. 그는 멈춰서서 절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그곳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셨을 뿐이에요.
학교생활에 있어서 문자그대로 절 '망설이게'했던 것은 제가 많은 그룹워크와 다른 사람들과의 많은 소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죠. 전 베일이 그러한 것들에 영향을 줄까봐 걱정이 되었어요. 하지만 전 그 정반대의 진실을 발견하였죠. 제가 베일을 착용하자,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제 동료들과 어울리기가 더 쉬워진 것이었어요.
전 베일을 쓰는 동안 어떤 종류의 부정적인 경험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만, 전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을 알고 있어요. 저도 예전엔 '우체통'이라든가 '닌자'라고 불리곤 했죠. 하지만 전 지금 그것이 신경쓰이지 않기 때문에 히잡을 입는 것이 너무 편해요. 흔히 미디어가 유난을 떨었을 때만이 공공장소에 나가기 좋지 않을 때라, 그럴 때만 자제하는 편이죠.
제 자매들은 꽤 다른 생활양식을 취해왔고 여러분은 그것을 존중해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견해를 다른 그 누누구에게도 강요해서는 안되고 저도 역시 베일을 입지 않은 사람을 얕보거나 그들보다 제가 낫다고 생각치 않아요. 이건 그런 문제에 관한게 아니에요. 이건 제 개인과 하나님 간의 연결에 대한 것이죠.
어떤 것이 여러분에게 올바르다면 여러분은 마음 속에서 그것을 그냥 알 수 있어요, 이건 오직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에요.
각국에서 오는 새로운 학생들을 맞아들이는 학기 초에는 많은 시선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 동기들은 정말 똑똑해요. 그들은 자연적으로 호기심을 갖고, 전 그들이 질문을 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전 아마 그들이 만나온 사람들 중에 처음으로 베일을 입은 사람일 것이겠지만, 우린 많은 흥미로운 논의를 했어요.
제 생각엔는 여성들에게 최신 트렌드를 쫓도록 많은 압력이 가해지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기 때문에 히잡착용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 같아요.
사람들은 베일이 억압의 도구라고 말하지만, 전 그것이 자율의 도구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최신유행에 뒤쳐졌다거나,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저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지 않고 내 자신 자체로 나답게 있을 수 있는 자유를 줬어요. 그것들 모두가 창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진정한 인생에서의 화두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될겁니다. 그것(히잡)은 세상 속으로 나아가 진실과 존중의 깃발을 치켜들수 있는 많은 자신감을 저에게 심어주었어요.
전 단색을 입는 경향이 많지만, 보통 검정색을 입지는 않아요. 갈색과 파란색을 더 자주 입지요.
베일을 착용하는 여성에 대해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잭 스트로우 (영국노동당소속 정치가)가 베일에 대해 말했을 때가 저희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시기였는데, 그건 베일의 긍정적인 면을 긍적적인 것으로 말하지 않고, 오직 자기방어적 관점에서만 말하는 니깝착용자들에 대한 엄청난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베일에 대한 어떤 논의도 자동적으로 부정적으로 규정하게 하였습니다."
31세의 라즈나라 아크타르(Rajnaara Akhtar)는 라흐마나라의 큰언니라고, 그의 머리카락과 어깨를 가리는 스카프 (=질밥)을 착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베일금지에 대한 염려-특히 해협 건너편 프랑스에서의-로 그녀는 히잡 보호단체를 만들었습니다..
프랑스가 2003년 처음으로 공공장소에서의 히잡착용금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 우리는 히잡 보호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다른나라긴 했지만 바로 해협하나를 두고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매우 무서운 전개였어요. 이 나라는 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그들의 정체성의 일부로서 필수불가결한 의복형태를 금지하고 싶어하는 나라이니까요.
우리는 사람들이 이에 대응해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대응이 무슬림 여성들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죠. 그건 우리가 사전대책이 없는 한발 앞선 대응이 없는 상황에서 많은 비판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비판에 대해 반론하는 것은 주로 남자들이고 그것은 편견을 고착화시킴으로서 더욱 좋지않게 작용하기 때문이죠.
유럽의 히잡에 관하여, 그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대변하는가에 대해서는 큰 오해가 있습니다. 이 편견을 없애고자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생각에는 히잡을 착용한 여성은 어떤 식으로든 억압받았다거나, 어떤 낡고낡은 옷차림을 강요받아왔다든가 하는 식의 편견은 아직도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그녀는 쫗은 많은 교육을 받은거에요, 젊은 여성이 히잡을 쓰기로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종교와 정체성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한 과정을 밟아가다보면 실제로 히잡을 포함한 겸손하고 수수한 의복을 택하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여러분이 겸손함이란 단어에 대해 말할 때 그건 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의미를 갖게 되지만 그것은 옳을 뿐입니다. 어떤 여성들에게 겸손함이란 단어는 그들의 얼굴과 손마저도 가리는 것이지만, 다른이들에게 그것은 그들이 무릎위로 몇인치 이상 올라오는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는 것을 뜻할수도 있죠. 그건 개인의 선택이고, 그것이 자발적으로 그 개인에 의해 선택된 것인 한, 그것은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이는 여성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어야 하며, 만약 여성들이 강요로 받아들일 어떠한 종류의 외압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제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겸허하고 겸손한 형식의 옷차림이었습니다. 전 긴 치마와 긴 소매를 가진 질밥을 포함한 여러가지 종류의 드레스, 혹은 야외로 다닐때 흔히 입는 짧은 치마 밑에 바지처럼 특수한 경우에 입는 옷등을 입습니다.
남성들에게는 히잡은 그 중요성이 충분히 강조되지 않은 것이지만, 여성의 옷차림을 관장하는 것과 비슷하게 남성들의 옷차림을 관장하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남성들에게도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명백하게 그들의 머리카락을 가리는 것은 아니더라도 겸허함=수수함의 범주에서 말이죠. 히잡은 천쪼가리가 아니라, 행동방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처신하고, 옷차림도 겸허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히잡이 칙칙하다던가, 따분하고 고리타분하다고 말합니다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 제 스타일에 따라 많은 머리수건 컬렉션을 갖고 있어요. 저에겐 겸허함이란 맵시있고 말쑥한 모습을 제외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그 두 가지는 동등하게 양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제 동생과 전 서로 대단히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전 그녀가 자율적으로 그러기로 결정한 사항이기에 그녀가 니깝을 착용하기로 한 결정을 지지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니깝은 제가 받아들일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전 니깝을 입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라흐나마라는 니깝을 입도록 내버려두는 무슬림들이 대단히 소수인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택했어요. 존경하는 의미에서 전 그녀의 용기와 헌신에 대해 엄청난 긍지를 느낍니다.
제 생각에 영국에서 히잡 자체는 사회에서 받아들여진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거 같지만, 니깝의 위치는 우려스러운 것 같아요. 저에게 그 우려는 만약 우리가 니깝을 금지하기 위한 단계로 진행하는 논의를 허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자유로의 침해를 허용하는 셈이 되고, 그것은 분명히 히잡에 대한 금지로 이어질 겁니다. 만약 우리가 니깝을 금지한다면, 10년이나 20년 지난 시점에서 히잡 또한 같은 방식으로 축출될겁니다. 제가 여성의 의복착용선택에 대한 자유를 규제하려는 어떤 이들에게든 대항해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계속)